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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얼짱이 조선에도? – 미의 기준, 시대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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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얼굴’은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단아함’, ‘청결함’, ‘품위’라는 미의 기준은 오늘날의 자기관리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시대를 건너 흐르는 아름다움의 기준,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요?

 

썸네일 : 얼짱은 조선에도 있었다

 
‘예쁘다’는 말, 언제부터 중요했을까?

우리는 지금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보정, 화장, 스타일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예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오늘날에만 있는 걸까? 조선시대, 그 시절에도 ‘예쁨’은 중요했을까?

생각보다 조선의 기록 속에도 ‘얼굴’을 중심으로 한 가치판단은 꽤 자주 등장한다. 지금처럼 대놓고 “얼짱”이라고 말하진 않았겠지만, ‘용모단정’, ‘용모 수려’ 같은 표현이 인물평가에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물론, 이 말은 단지 잘생겼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외모와 인품의 조화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미(美)’에 대한 정의를 보고 갈게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미’의 의미 확인하기

 

 

 

 
고운 얼굴, 아름다운 성품을 담는 그릇

조선시대 여성의 외모는 ‘화려함’보다 단아함과 정숙함이 핵심 가치였다.
피부는 흰 빛깔을 우선시했지만, 이것은 미적인 이유라기보다 청결함과 품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두운 얼굴은 불행하거나 고된 노동을 뜻했으며, 신분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눈썹’이 그 사람의 품격을 드러낸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버들잎 같은 눈썹”, “봉황 눈썹” 등의 묘사는 단순한 외모 묘사라기보다, 그 사람의 마음결까지 가늠하려는 시선이었다. 지금 우리가 SNS에서 예쁜 눈썹을 부러워하고, 아이브로우 제품을 고르며 고민하는 것과 묘하게 닮아 있다.

 

 

 

 
얼굴만 예쁜 건, 진짜 예쁜 게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름다운 얼굴보다 어진 덕을 중히 여기는 가치가 강조되었다. 유교 문헌과 교육서에서 이러한 인식은 널리 확인된다. '미(美)'는 외모 하나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말씨, 태도, 심성까지 통합된 감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니 조선의 ‘얼짱’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독보적인 얼굴'이 아니었던 셈이다.

전채용신의 『팔도미인도』, 조선 여성들을 8등신으로 그려낸 이유는?
▶️ 당시 서양 시선과 조선 화풍의 변화, 팔도미인도에 담긴 배경 살펴보기

 

이런 생각은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과거 시험장에서 얼굴이 잘생겼다고 합격할 순 없지만, 잘생긴 사람은 시선을 끌었고, 주목받는 건 사실이었다. 왕의 외모에 대해 감탄하는 표현은 구체적 기록은 없지만, 간혹 왕의 표정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하다. 궁중 여성의 반응은 직접 기록으로 확인되기 어렵다. 그렇지만, 결국 시대를 불문하고,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첫 번째 열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예쁜 걸 좋아하는 이유

우리는 왜 그렇게 외모에 집착할까?
조선 시대엔 그 답을 ‘기품’과 ‘절제’에서 찾았고, 지금은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되새긴다. 어느 시대든, ‘아름다움’은 자기표현이자 타인과의 소통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만의 가치관이 그 ‘예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결정한다.

오늘의 미는 유행을 좇고, 기술을 바꾸고, 시장을 뒤흔들지만, 결국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조선의 한복 속에도, 지금의 거울 속에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

 

 

 

 
생각해 볼 거리 하나

우리는 오늘, 예쁜 사람을 보면 “관리 잘하셨네요”라고 말한다.
조선시대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마음이 맑으신 분이네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과연, 지금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내'가 정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세상이 대신 정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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