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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너지는 줄도 몰랐던 그날들 – 기후가 삼킨 문명의 기억 현재의 위기인 기후변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기후는 한 번도 갑자기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서히, 느리게, 문명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야와 이스터섬, 인더스까지—그들의 이야기 안에 오늘 우리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이 역사에서 깨달은 바를 현재에 비추어 보겠습니다.과거 문명의 몰락에 대한 아래의 견해는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의견을 종합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아무도 '기후'를 탓하지 않았다어느 날 갑자기 문명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대개 전쟁이나 침략, 혹은 어떤 신화적 재앙을 떠올리죠. 하지만 그보다 더 광범위하고,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힘'이 있었습니다.기후 변화.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모아이 석상이 방패처럼 서 있던 이스터섬, 한때 찬란했던 마야의 신전,.. 더보기
세종의 실패는 무엇이었나 – 성공만 조명된 세종의 실수들.. 세종대왕도 실수했습니다. 북방 정책이 몰고 온 백성들의 고충, 의료 제도의 한계, 말년의 판단 흐림…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았습니다. 위대한 일은 어쩌면 불완점함의 다른 표현일지 모릅니다. 세종도 그러했습니다.. 위인은 실수하지 않았을까?“실패한 사람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사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특히 위대한 사람들 앞에 설 때,우리는 그들의 무게에 눌려 자신을 자책하기 쉽다.“나는 왜 아직 이만큼밖에 안 됐지?”하지만 세종도,그토록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도 실패했다.그의 위대함은 완벽함에 있지 않았다.오히려 그 불완전함을 마주하고, 더듬듯 앞으로 나아갔던 태도에 있었다. 세종도 실수했다 - 위대함 뒤에 감춰진 그림자세종이 .. 더보기
『정약용도 무너졌었다 – 유배지에서의 마음』 어느 시대나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위대해 보이지만, 진짜 마음의 감동을 주는 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입니다.그 처절한 회복의 시간을 견딘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죠.우리가 아는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쓴 실학자, 개혁가, 위대한 학자입니다.하지만 그 또한 억울하게 죄인이 되어 고향을 떠났고, 막내 아들의 부고를 듣고도 눈물조차 삼켜야 했던 아버지였습니다.정약용은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글을 썼고, 사람을 생각했고, 스스로를 붙잡았습니다.이 시리즈는 그의 업적보다도, 그가 어떻게 고독을 견디고 다시 자신을 일으켰는지를 보여줍니다.정약용을 다시 쓴다는 건, 한 시대의 사상가를 인간으로 마주하는 일이자, 오늘의 우리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는 성장의 연습이기도 .. 더보기
얼짱이 조선에도? – 미의 기준, 시대를 건너다 조선시대에도 ‘얼굴’은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단아함’, ‘청결함’, ‘품위’라는 미의 기준은 오늘날의 자기관리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시대를 건너 흐르는 아름다움의 기준,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요? ‘예쁘다’는 말, 언제부터 중요했을까?우리는 지금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보정, 화장, 스타일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예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오늘날에만 있는 걸까? 조선시대, 그 시절에도 ‘예쁨’은 중요했을까?생각보다 조선의 기록 속에도 ‘얼굴’을 중심으로 한 가치판단은 꽤 자주 등장한다. 지금처럼 대놓고 “얼짱”이라고 말하진 않았겠지만, ‘용모단정’, ‘용모 수려’ 같은 표현이 인물평가에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다... 더보기
가짜뉴스는 역사에도 있었다 –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의 루머 조선에도 루머가 있었다. 진실보다 빠른 감정의 뉴스, 그리고 통제하려는 권력. 지금 우리와 닮은 모습이 있지 않은가? ※ 본문에 언급된 역사 사례는 실록이나 신문 등 1차 사료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 것이 아닌, 일부 역사 연구서 및 해석적 자료에 기반한 재구성입 니다. 정사(正史) 인용이 아님을 밝혀 드리며, 정확한 사료 인용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관련 문헌을 직접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짜뉴스는 늘 사람과 함께한다오늘날 우리는 ‘가짜뉴스’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정치적 조작, 사회 불안, 혐오 선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퍼지는 정보의 거짓과 왜곡. 하지만 이 개념은 결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대한제국시대에도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 퍼뜨리고 싶은 헛소문을 통해 정.. 더보기
시대를 바꾼 1인 미디어 - 일기, 비망록의 힘.. 기록은 왜소했지만, 시대를 흔들기도 하였다. '허난설헌'과 '정약용'의 글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진심이 담겨 있다. 시대를 바꾼 1인 미디어 – 일기, 비망록의 힘지금 우리는 거대한 매체와 뉴스, 알고리즘으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있지만, 역사는 종종 아주 작은 문장으로 기록된다.누구의 승인도 받지 않은 개인의 기록, 말하자면 ‘일기’와 ‘비망록’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잊힌 사람을 그리워하고,한 인간의 내면을 천 년 뒤까지 살아 있게 한다.기록은 권력이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정직하다.조선 후기 여성의 마음을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도,나라 잃은 지식인의 슬픔을 오늘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것도,모두 한 개인이 남긴 기록 덕분이다. 허난설헌, 여성의 고독을 기록하다▶허난설헌은 시인으로 .. 더보기
“그들도 그만두고 싶었다 – 조선의 사직서” 지쳐 떠났던 조선의 선비들. 그들의 사직서엔 지금 우리와 닮은 마음이 적혀 있었습니다.시대는 달라도, 그 마음은 같았다이 질문은 얼핏 보면 장난처럼 들릴 수 있다. 조선은 '왕이 시키는 대로' 사는 시대 아니었나? 하지만 의외로 조선의 공직사회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안고 살았다. 단순히 권위에 눌린 것이 아니라, 조선의 관리들도 명예, 양심, 생계, 정치적 갈등 등의 이유로 직을 거절하거나 사직서를 제출했다. 놀랍게도 '퇴사'는 조선에도 분명히 존재했던 현상이었다. 조선시대의 퇴사는 주로 세 가지 이유로 나타난다. 첫째, ‘자진 사직’, 즉 스스로 벼슬을 그만두는 형태다. 둘째, ‘사면초가형 퇴사’, 정치적 압력이나 외부 공격에 의해 떠밀리듯 그만두는 경우다... 더보기
삼국통일, 고구려가 했더라면.. 고구려가 삼국통일에 실패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통일에 성공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을 한 번쯤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통일 실패의 배경을 알아보고, 고구려가 통일에 성공했을 경우의 가상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토, 정체성, 외교 지형까지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리 역사에 대한 통찰과 자긍심을 되새겨보겠습니다. 목차고구려, 그 찬란함왜 통일 못했을까?고구려가 이겼다면?!지금과 뭐가 달라 지는 거지? 고구려, 그 찬란함고구려는 기원전 37년 주몽(동명성왕)에 의해 건국된 후, 4세기 중반 광개토대왕(재위 391) 시기를 거치며 한반도 북부부터 만주 일대까지 거대한 영..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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