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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가짜뉴스는 역사에도 있었다 –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의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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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루머가 있었다. 진실보다 빠른 감정의 뉴스, 그리고 통제하려는 권력.

지금 우리와 닮은 모습이 있지 않은가?

 

※ 본문에 언급된 역사 사례는 실록이나 신문 등 1차 사료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 것이 아닌, 일부 역사 연구서 및 해석적 자료에 기반한 재구성입      니다. 정사(正史) 인용이 아님을 밝혀 드리며, 정확한 사료 인용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관련 문헌을 직접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썸네일 : 가짜뉴스는 역사에도 있었다

 

 
가짜뉴스는 늘 사람과 함께한다

오늘날 우리는 ‘가짜뉴스’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정치적 조작, 사회 불안, 혐오 선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퍼지는 정보의 거짓과 왜곡. 하지만 이 개념은 결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대한제국시대에도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 퍼뜨리고 싶은 헛소문을 통해 정국을 흔들거나 불안을 확산시켰다. 입에서 입으로 와전됨이 상상을 사실로 만든 것이다.

 

기록은 있다. ‘소문’이라는 단어로 남은 흔적들, 혹은 ‘망언(妄言)’이라며 감옥으로 끌려간 평민의 입에서 나온 말들. 조선은 체계적으로 유언비어를 억제하고자 했고, 그 이유는 단순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국가의 안정을 해치는 중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민간의 입에서 왕실을 향한 소문까지

1. 연산군 10년경, 폐비 윤씨의 죽음이 독살이었다는 소문이 궁중과 시전 상인들 사이에 퍼졌고, 이에 연루된 자들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일부 사학서 및 해설서에 전해지는 것에 근거하며, 『연산군일기』 등의 정사에서 해당 날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2. 또한 연산군 시기에는 “세자가 죽었다”, “임금이 중독되었다”는 헛소문으로 인해 백성들이 국문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루머 단속 사례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구체적인 사료 일자나 문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제국, 황제권을 흔든 루머들

1. 고종이 강제 퇴위된 이후, 순종 즉위기에는 “고종이 살아 있다”, “복위될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내용이 일부 연구서에 등장한다. 일제는 이를 황제 복권 시도로 간주하고 유언비어 단속에 나섰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 (『순종실록』이나 당시 언론에서 명확히 일치하는 표현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2. 또한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황제를 협박하여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정부가 이를 해명하며 금언 단속령을 내렸다는 전언도 존재한다.
→ (『한성주보』, 관보 등에서 해당 내용을 암시하는 기록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직접 확인 가능한 문장은 일치되지 않았다.)

 

 

 
루머는 공포와 함께 움직였다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 루머는 대개 불확실성과 공포가 극대화된 시기에 확산된다. 왕이 바뀔 때, 전염병이 퍼질 때, 외세가 개입할 때, 사람들은 믿고 싶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조선 시대엔 망언죄로, 대한제국기에는 반국가 유언비어로 규정되어 처벌 대상이 되었지만, 그 뿌리는 감정과 불안이었다.

 

 

 
감정과 불안이 퍼뜨린 뉴스

사실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건 감정이다. “누군가의 죽음”, “황제가 돌아온다”,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공포와 희망 사이에서 가장 먼저 퍼졌다. 믿고 싶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퍼뜨리는 본능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가짜뉴스는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불안과 감정이 만들어낸 ‘말의 전염병’이다. 정보를 통제하려는 국가와, 불안을 말로 표현하는 민중 사이의 간극은, 오늘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그때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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